查看原文
其他

[문학닷컴] (단편소설) 결혼등기증 (김영금)

조글로 潮歌网 2023-06-14

 조글로   

       이슈 단체 인물 비즈 문학 력사  

제보광고검색pc버전| 건강|노래珍藏版|web




단편소설
결혼등기증


김영금


 

접대원의 오해

지난 토요일이다. 해가 서산에 너울너울 져가는 때, 중앙가가두판사처에는 두 늙은이가 어줍게 인사하며 들어섰다.

한창 종이장에 자를 대고 금을 긋고 있던 접대원각시가 방실 웃으며 걸상에서 일어나 알은 체를 하였다.

“로인님들, 무슨 볼 일로 오셨습니까?”

얌전한 접대원이 곰상스레 물었건만 두 늙은이는 머뭇거리며 대답을 얼씬 못했다. 접대원은 얼른 걸상 두개를 끌어다 로인들 앞에 놓으며 자리를 권했다.

“난로 곁에 앉아 몸을 녹이세요.”

설멍한 솜저고리를 입고 앉아 담배만 뻑뻑 빨던 바깥로인이 말끝을 떼였다.

“결혼등기증 내러 왔수다.‘

얌전한 각시는 고개를 끄덕하고나서 이번엔 안로인을 돌아보며 물었다.

“할머닌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안로인이 손을 비비작거리며 주밋주밋하자 바깥로인이 담배대로 삿대질하며 핀잔을 주었다.

“임자두 얼른 얘길 해야지!”

그러자 안로인은 울먹울먹하며 모기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나두 결혼등기증 내러 왔소.”

말을 마친 안로인은 자기 무안에 취해서인지 아니면 못 할 말을 했다고 느껴서인지 얼굴이 벌개지며 눈물을 훔쳤다.

해납작하게 생긴 접대원은 그들의 말을 제나름으로 리해했다.

“로인님들, 결혼등기는 일생대사를 정하는 일이여서 본인들이 와야 합니다.”

그러자 바깥로인은 걸탐스레 빨아들인 담배연기를 훅 뿜어내며 성을 버럭 내였다.

“본인들이우다. 어서 해주우!”

그제야 정신을 번쩍 차린 접대원각시는 눈을 동그렇게 뜨고 두 로인을 번갈아보았다. 얼핏 봐선 오망을 쓰는 것 같은데 딱히 보면 그런 늙은이들 같지 않았다.

안로인은 하얀 세수수건을 머리에 둘렀고 회색 뉴똥치마에 은색 호박단저고리를 입고 그우에 노란 털깃을 두른 쪼끼를 받쳐입었다. 두볼은 오물고 조골조골한 두 손을 맞잡고 앉은 양이 흡사 조각상을 방불케 한다.

바깥로인은 휘우뚬한 키꼴에 머리와 수염이 허옇긴 해도 눈초리가 우로 날아오른 걸 보면 한생 두고 누구에게 눌리워 살아갈 늙은이가 아니였다.

접대원은 처음 당하는 일이라 주저심이 들었다. 어쨌든 주임께 알리고 결론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하며 접대원은 철필을 꺼내 들었다.

“로인님들, 방금 제가 오해했습니다. 오늘은 명함과 년령, 주소를 남겨두고 돌아가십시오. 이제 이걸 취급하는 주임이 오면 함께 연구해서 결론을 지으면 인차 로인님들을 찾아가든지 하겠습니다.”

바깥로인은 막무가내라는 듯 허술한 털모자를 들고 일어섰다.

“난 박선달이라 하고 저이는 김선녀라 부르오. 난 예순여덟이고 저인 예순다섯이라오. 중아가 4주민회에 사오만 찾아오지는 마오. 래일 이맘때 다시 올테니 실수 없게 해주우다.“

박로인이 대통을 손바닥에 툭 치고 일어나 씽하니 문을 밀고 나가는바람에 찬공기가 휙 안겨들어왔다. 김선녀로인이 뒤미처 앙기작걸음으로 따라나섰다.

그날 밤, 접대원 영실이와 주임 옥인이는 이 신비한 “신랑”, “신부”에 대한 조사길에 올랐다.

 

신랑—박선달

신랑 박선달에게는 삼사십줄에 들어선 아들 셋하고 시집 간 딸 하나가 있다. 몇년전만 하여도 선달내외는 변강시에서 50여리 떨어진 박골에서 농사질을 하였다. 산골이라 물좋고 산좋아 선달내외는 사남매를 키워 중학공부를 읽히고 시집장가도 보내 시내 출세를 시키였다. 손근들이 수두룩해지자 두 아들 며느리는 경쟁이라도 하 듯 술근이나 떠가지고 와선 새로 새 아이를 시부모 앞에 떠밀어놓고 가군 하였다. 문쩍에 불이 나게 자손들이 드나드는 걸 보고 남들은 부러워 하였다. 동네칭찬이 높을 수록 로친은 축해만 갔다. 맏손자의 옷을 빨고 나면 둘째네 손녀가 우유통을 안고 울지, 그걸 달래면 또 다른 놈이 보채지, 그것들을 해먹이고 빨아입히고 게다가 령감대접까지 하고 나면 돼지가 주둥이로 문지방 밑을 뚜지지, 개가 낑낑거리지… 그래도 “복”한 로친은 군말없이 이 끝없는 시발을 달게 하였다. 진종일 삼검불 같은 머리를 떠이고 돌아치다간 밤이면 동네돌이도 못하고 입을 헤 벌리고 잠든 꼴을 보고는 황소 같은 령감도 마음이 쓰린지 혀가름질 하였다.

“복하다구? 놈년들은 흔즈즈르 기름을 쳐바르고 늙은 것들은 파밭을 캐고 하긴 잘한다 쯔쯔쯔!”

그 소리에 잠을 설친 로친이 푸시시 일어나 하품을 짝 하고는 핀잔을 준다.

“그게 락이지 뭐요. 제 손군을 가지고 고생은 무슨 고생이라구 늘 부르튼 소리만 하우.”

령감은 말은 곱게 못해도 맘은 수박 같아 겉보다 속은 시원하고 달았다. 장날이면 담배떼를 들고 가 한잔하고 돌아올 때면 의례 사탕봉지를 손에 쥐고 들어와선 벌쭉 웃으며 손근들 앞에 던져주군 하였다.

“먹어라, 이놈들아. 참새새끼 같은것들, 하하하…”

령감 로친이 손발을 맞춰 도개짐승을 치고 채마전을 부지런히 가꾸고 산나물부업, 목수부업을 하는데서 별로 자식들의 방조 없이도 궁색하게 보내지 않았다.

그날은 박선달의 생일날이였다. 세 아들집 식솔들이 한구들에 모여앉았다. 동네로인들에게 술잔을 돌구고 찰떡그릇을 올리자 술에 얼근한 맏아들이 대중 앞에서 아버지 어머니를 그만 고생시키고 인젠 시내로 모셔가겠노라 선포하였다.

가마목에서 볶음채를 담던 맏며느리 남편의 허풍치는 소릴 듣고는 괘씸하가 그지없었다. 제 혼자의 집인가 뭐, 토론도 없이 흥! 하지만 이미 남편이 이 많은 사람 앞에서 공포한 이상 안해인 자기가 되끌어들일 수가 없었다. 그는 검싯검싯한 대들보를 눈박아보며 속궁리를 해보았다. 이 집은 아무리 못받아도 천원소리가 날게구 2백근짜리 큰 돼지에 작은 돼지도 백근은 가겠지. 개, 닭, 토끼… 저따위들을 팔아도 큰아들 혼사돈은 문제 없겠다, 량식도 1년은 문제 없을 게고… 늙은이들이야 앉으면 몇해 앉겠는가!… 맏며느리의 푸르스름한 얼굴에는 화색이 돌고 오종종한 눈과 입가에는 싸리꽃같은 웃음이 피여났다.

“숱한 자식들이 눈이 퍼래 있으면서 모셔가지 않으면 동내분들도 뭐라겠습둥, 인젠 내려가깁소.”

맏며느리는 보란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시아버지 쪽을 향해 입을 놀렸다.

목이 밭은 맏며느리 입에서 이렇게 대바르고 험씨 있는 말이 나오니 박선달내외는 고생 끝에 락이라고 자식을 둔 자호감이 한가슴 뻐근히 차올랐다. 허지만 웅심 깊은 선달령감은 시치미를 뚝 뗐다.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건 하늘이 어련히 내려 정한 일이다만 아직는 너들 신세를 볼 때가 안되였다. 차차 기맥이 모자라면 갈라구!”

한달이 차지 않아 맏아들은 과연 자동차를 몰고 짐실으러 왔다. 령감은 안 가겠노라 잡아뗐다.

“기맥을 좀 출 때 내려가 뒤시중을 들어줘야 누워 일어 못 날 때 덜 어렵다니…”

로친이 이렇게 졸라대서야 령감은 하는 수 없이 가장 집물과 도개짐승을 로친과 함께 실어보내고 자기는 집을 처리하겠노라며 뒤에 남았다.

정작 한구들에 모여앉고 보니 집이 비좁아 잠자리싸움, 이런 일 저런 일 낯을 붉힐 일이 많아지고 밸이 꼬이는 일이 많아졌다.

가지고 내려온 잡동사니들은 언녕 다 팔아 큰손자놈 잔치에 몽땅 밀어넣었다. 잔치준비에 바삐 보내고나니 로친은 구들 아래목에 쪼크리고 누워 흥흥하며 앓았다. 워낙 숙붙은 맏며느리 이마는 점점 찌프러져 진종일 펴질 줄 몰랐다. 시어머니 밸에 개배때기는 찬다는 격으로 며느리는 남편과 앙당거리기도 하고 아이들과 공연히 신경질을 쓰기도 했다. 선달령감에게는 앵돌아진 며느리의 꼴을 보는 것보다 더 쓰겁고 참기 어려운 일은 없었다. 박선달령감은 워낙 뒤일이 미심해서 집을 판 돈을 저금해 놓고는 외상으로 팔았다며 내놓지 않았댔다. 그날 박령감은 저금해 놓은 돈을 찾아가지고 거리에 나가 단칸짜리집을 산 다음 앓는 로친을 데리고 나가버렸다. 그날부터 박령감은 A공장에 가서 수직서는 일을 맡아하였다. 낮에는 목수일이나 좀 하고 로친은 쉼쉼 콩나물 장사를 하였더니 두입이 살아가기 걱정 없었다.

“그래두 로친 손에서 얻어먹는 게 제일 진속이라니…”

령감은 얼근해 들어온 날이면 코를 씽긋하며 곧잘 롱담에 진담을 담았다.

운명이란 어쩔 수 없었다. 흥흥 앓던 로친이 위암에 걸려 여러달 앓던 끝에 덜렁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날 이때까지 가마목에 앉아 못본 선달령감이라 슬픔도 슬픔이려니와 살아갈 일이 막연하였다. 실로 청천벽력이였다.

밤이면 밤마다 령감들이 모여들어 독보조를 합네 하고는 밤새껏 장기를 둔다, 신세타령 한다 하다나니 집안은 담배연기에 그을려 전병굽는 집 같았다.

아버지 일이 가슴에 걸려 조양진에 시집간 딸 실옥이는 두주일에 한번씩 와선 옷가지들을 빨아드리고 남새도 마련해 놓고 돌아가군 하였다. 시부모를 모시는 처지여서 아버지를 모셔갈 수도 없었다. 혹 며칠간이라도 놀러 가시자 해도 아버지는

“내가 뭐 사둔로친과 마주앉아 있겠냐? 하며 흥 하고 코방귀를 뀌군 하였다.

 

박령감의 생일날

로친이 죽은 후의 박령감의 첫생일은 맏아들집에서 차렸다. 자식들이 한구들에 모이긴 하였어도 이전에 시골에서 쇠던 것처럼 맘 편하지 못했다. 상에 오른 술과 채도 이전보다 나았건만 웬 일인지 기름을 짜내고 남은 깨묵지처럼 분위기가 어숭더숭하였다.

술상을 물린 후 선달령감은 인차 돌아나오기 뭣하여 웃방 벽 밑에 손자놈의 베개를 베고 누워 아슴푸레 잠을 청했다. 정주간에서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령감의 귀에 들려왔다.

“이번엔 둘째동세 아바이를 모셔보오. 골고루 모셔 봐야 경중을 안다니…” 맏며느리의 말이다.

“어떤 땐 형님이 모시겠노라 모셔내려오곤 어째서 어떤 땐 나를 모시라 합둥? 언제 돈 한푼, 소래 한짝 나눠줬습둥…”

팩한 둘째동서는 이렇게 까박을 놓으며 엉켰던 불만을 왈칵 쏟아놓았다.

그러자 무남독녀 외딸로 자기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셋째며느리 말소리가 들려왔다.

“형님네 곤난하다면 제가 모셔가겠어요. 남들이 웃겠어요. 아바이를 혼자 둔다고…“

이번에는 두 동서가 합창이라도 하 듯 웨쳐댔다.

“그런 반말공부는 듣기 싫소. 사둔로친 곁으로 갈 아바이요?”

“서로 때묻으면 일없을 거얘요.”

박령감은 듣다못해 건가래를 벽에다 택 뱉고는 “으흠—”하고 신음소릴 내며 돌아누웠다. 그바람에 며느리들 말싸움이 뚝 그쳤다.

옆방에서는 술상을 마주앉아 얼근히 취한 아들 셋이 좋다궂다 떠들어댔다.

“맏아들인 내가 아버지를 잘 모셔야 도린데 애 에미가 성질이 나빠 아버지를 놉히니 …이제 리혼하자 해도 남들이 웃을 게고…” 마음이 어리무던한 맏아들이 한숨을 쉬며 하는 말이다.

“뼈가 없는 놈 같으니라구, 녀편네 하나 다루지 못하는 등신이라구!” 박령감은 속으로 욕하였다.

“우리 집에 모시면 좋겠는데 가시어머니가 계셔서 아버지가 가시자 할가요? 내가 아버질 설복해보지요. 참, 둘째형님네는 애가 하나뿐이지, 온돌방도 세칸이니…” 셋째는 둘째형의 이마에 퍼런 피줄이 일어서는걸 보고는 금시 말끝을 흐리웠다.

그 말에 두볼을 불구던 둘째가 문득 무슨 수가 생긴 듯이 웨쳐댔다.

“나와 아버진 성격도, 리상도 맞지 않아 곤난하다. 형님, 이러지 말고 우리 형제들이 몇달씩 돌아가며 모시도록 하기요.”

취중에 진담이라고 그것이 과연 자기의 피와 살, 뼈를 갈라준 아들의 입에서 튕겨나온 말이라고 생각하자 선달령감은 불덩이 같은 것이 불쑥 목구멍을 올리막는 것 같아 숨이 막히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술기운은 가신 듯 달아나버렸다.

“내가 시라손들을 길렀구나! 원통쿠나!” 박령감은 속으로 부르짖었다.

박령감은 주먹으로 쿵쿵 소리나게 가슴을 몇번 쳐서 숨을 돌린 후 베개를 허망 들어 아들들을 향해 내뿌렸다. 그런데 왕청 같은 사이문이 맞아 “드르를”하고 애처로운 소리를 냈다.

박령감은 벌떡 일어섰다. 여느때 없이 얼굴이 굳어진 박령감이 송곳눈을 해가지고 아들 며느리들을 하나하나 찔러보는 바람에 모두 숨을 죽이며 외면하였다.

“나 때문에 누구도 걱정할 것 없다.”

박선달은 이렇게 정중하게 선포하고나서 씽하니 문을 차고 나섰다. 휑뎅그렁한 집구석에 돌아와 누운 박령감은 련 이틀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아들들이 와서 코가 닳게 빌어도 아예 그는 응대조차 하지 않았다. 셋째아들 내외간이 통졸임에 술병을 들고 와 울면서 간청하였다.

“아버지 우리와 함께 갑시다!”

“가거라, 맏아들 집에 안 있는 내가 너네 집에 가겠느냐.” 박령감이 단마디로 거절하였다. 박령감은 일생 동안 고스란히 자기의 살과 피, 마음을 한점도 남김없이 남편과 자손들한테 바친 로친이 사뭇차게 그리워졌다. 그래서인지 간밤 꿈에 로친이 와서 가마를 가시더니 이 죽을 끓이였다… 얼마쯤 지났는지, 어슴푸레 성신이 들어 눈을 뜨고보니 젊었을 때의 에미 얼굴을 꼭 떼닮은 딸이 죽그릇을 들고 아버지 머리맡에 와 앉아있었다.

“제길할, 먼저 갈건 뭐람!” 박령감은 혼자 중얼거렸다.

 

신부—김선녀

김선녀로친은 조양진에 살고 있다. 늦게야 아들 하나를 본 김선녀내외는 그걸 금이야 옥이야 하며 키웠다. 아들이 열살나던 해 령감은 중풍을 맞아 세상을 떴다. 어머니는 아들을 대학공부를 시켜주고 장가를 보내였다.

상점에서 영업원 질 하는 며느리는 아침이면 밥상에 숟가락을 받쳐놓을 때까지 분세수를 하였다. 괴나리 같은 며느리는 어쩌다 아이를 낳았다는 게 울보였다. 그래서도 사람고생한 시어머니는 며느리 정은 없어도 손자놈이 울고 웃는 재미에 눈살이 풀리는줄도 모르고 암죽을 끓인다, 우유를 끓인다 하며 진종일 서둘렀다. 그러던 차 애가 속탈을 만나 우유를 먹지 않고 보채기만 하였다.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아이를 잘못 거둬 그렇다고 옹알종알거렸다. 약을 먹이고 병원놀음을 했는데도 밤새 보채여 시어머니는 젊은이들을 자게 하느라 아이를 업고 지정거렸다.

한밤중이 되여 오줌누러 나오다 애를 업은 어머니가 베개를 받치고 앉아 잠든 걸 보고 아들은 가긍스러워 보였든지, 모자간의 특수한 감정이 솟구쳐 올랐든지

“어머니, 애를 내가 볼테니 이리 주고 가마목에 좀 누워쉬세요.”하며 어머니를 흔들어깨웠다. 그바람에 애가 또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잠을 설친 며느리가 입을 뾰족이 내밀고 눈을 가슴츠레 뜨고 나오더니 다짜고짜 로친의 허리에서 애를 쑥 뽑아가지고 방안에 들어갔다. 뒤이어 미닫이문이 드르릉 울며 닫겨지고 헝겊을 째는 듯한 푸념질소리가 들려왔다.

“진종일 애 하나 보는 일도 못하니…”

그 말엔 자존심이 상했던지 아들은 입이 뿌죽해진 안해의 뺨을 불이 번쩍나게 후려갈겼다. 애는 뿌리워 이불 우에 벌렁 나딩굴며 죽는 소릴 질렀다. 며느리는 입을 싸쥐고 개니, 소니 하며 한바탕 욕질하더니 보짐을 싸 이고 에미 집으로 달아나버렸다.

이 복새판에 난처하게 된 것은 시어머니였다.

“이를 말이 있으면 조용조용 이를 거지 상사집처럼 이게 뭐람? 그런다고 제 성질 개를 줄가? 다 내 팔자가 글러서 그렇지! 흑흑흑…”

로친은 우는 손자놈을 끌어안고 제 설음에 느껴 울었다. 아들은 두손을 깍지끼고 이불 우에 드러누워 당장 리혼을 하겠다고 큰소릴 쳤다.

그 바람에 비단같이 마음고운 로친은 눈물을 닦고 아들을 달래였다.

“집안일에 와자자하면 남이 웃는다. 내 이제 살면 몇년을 살겠니? 이 애가 제 에미 없이 천대받는다면 죽은들 눈을 감겠냐? 영 머저리가 아니니 저도 늙어가느라면 깨칠 때 있겠지…”

“다 제 잘못입니다. 제 녀편에 하나 교양 못해서 어머니를 이렇게 고생시킵니다.…” 아들은 진실로 참회하였다.

이튿날 김선녀는 곱게 차림새를 하고 사돈집에 가서 며느리를 데려왔다. 별 재미는 없어도 그럭저럭 1년이 지나갔다.

어느날, 아들은 주가무단에서 어쩌다 공연 왔다면서 표 석장을 떼가지고 왔다.

“어머니, 얼른 저녁을 잡수시고 떠납시다. 주가무단에서 공연하는 노래, 춤은 볼만합니다.”

아들이 간곡히 권하니 김선녀의 마음도 동했다. 워낙 구경을 좋아하는 김선녀는 며느리를 삼은 뒤부터는 낌새에 들기 싫은 데다 며느리의 꺼리는 눈치가 보여 아예 구경을 다니지 않았다. 귀한 손자가 난 후부터는 더구나 아이가 바람을 맞을가봐 늘 아들 며느리를 구경보내곤 집지킴을 하였다.

이날따라 옆집 실옥이 시어머니가 곱게 차리고 나와 같이 구경가자고 강권하였다.

“그럼 떠나볼가!” 선녀로친은 농짝문을 열고 주섬주섬 나들이옷을 꺼내였다.

구경을 좋아 안 한다면서 집지킴을 하던 시어머니가 정작 떠날 차비를 하는걸 보고 며느리는 새초롬해져서 남편을 할끔 흘겨보며 말했다.

“그럼 당신이 어머니와 같이 가세요. 제가 집지킴을 할테니!”

일이 재미없게 되니 선녀는 꺼냈던 옷들을 도루 넣으면서 속이 아파 안가겠으니 젊은 것들이나 가라며 물러앉았다. 그러자 아들은 제 밸을 못이겨 50전짜리 갑표 3장을 오리오리 찢어 부엌에 내동댕이치고 식장안의 술병을 꺼내 입에 대고 꿀꺽꿀꺽 들이켜고는 벌렁 침대우에 드러누웠다. 실옥이 시어머니는 괜히 들어왔다고 후회막급해서 돌아나갔다.

 

련애경과

김선녀의 불행을 누구보다 손금보듯하며 동정하는 사람은 옆집 실옥이 시어머니와 그의 착한 며느리 실옥이였다. 실옥이는 변강시 박선달령감의 효녀이다. 실옥이는 시부모를 극진히 존경하고 살뜰히 모셔 조양진에 칭찬이 자자하다. 그런데 실옥이는 자기 아버지 신세때문에 늘 걱정하고 있었다.

며느리 얼굴에 그늘이 질 때마다 시어머니도 한숨을 쉬는 것이였다.

“한번 더 내려가 모셔오라니깐, 웃방도 있겠다 사둔도 원…”

“아버지 고집을 아시면서도 그러시네. 전번에도 하시는 말씀이 "아들집에 안 있는 놈이 딸집에 있어? 난 혼자 사는것이 좋아, 맘 편하고"라는 것이였어요…”

부엌에 앉았던 실옥이 시어머니는 눈을 가늘게 쪼프리고 며느리의 퍼지기 시작하는 네모진 얼굴이며 언제나 수집어하는 눈이며를 한참이나 올려다 보다가 엉거주춤 일어서 두손으로 부엌이마를 짚고 나지막한 소리로 속삭였다. 마치 자기의 속심을 누가 엿보고 빼앗아기기라도 하는 듯이 힐끔힐끔 문쪽을 보았다.

“자네야 이 늙은 것의 마음을 잘 알테지, 난 사둔을 위해 생각해낸 거라우 옆집 선녀로친이 자네 보겐 어떤가?”

“그 할머니야 더 이를 데 없이 어질고 도리 밝은 분이지요. 그런데 어머닌 갑자기?”

며느리는 눈을 번쩍 올리뜨며 시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시어머니가 자기와 꼭 같은 생각을 했다는데서 실옥이는 더구나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불행한 령감 로친이 함께 있으면 늘그막사랑이 더하다는 말과 같이 만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지 않겠는가! 실옥이는 요즘 가끔 이런 생각을 하다간 도리여 뒤집어버리군 하였다. 그 집아들 며느리가 알면 뭐라 할가?

“내가 중매군으로 나설테니 자넨 이쪽 근심을 말고 어서 내려가 사둔을 모셔오게나, 신식련애를 시켜보자니깐.”

그러던 어느날, 실옥이네는 아버지를 대접한다는 명의로 닭을 잡고 옆집 선녀로친까지 모셔왔다.

딸집에 다니며 몇번 반갑게 인사차림을 한 적 있는지라 박선달이와 김선녀는 엉거주춤 일어서서 인사를 나누었다. 선녀로인이 나간 후 딸은 시어머니와 짜고들어 “신부”를 소개했더니 성미가 괄괄한 박선달은 선뜻 응낙을 하였다. “신부” 쪽은 실옥이 남편이 나서서 김선녀 아들을 설복시켰다. 어머니가 만년을 맘 편히 지낼 수 있다면 자긴 “새 아버지”를 친아버지로 삼고 드나들겠다며 선녀 아들은 눈물을 머금고 대답하였다.

처음엔 펄쩍 뛰던 김선녀는 이 사람 저 사람이 권한 데다 당자가 마음에 들었던지, 자기의 환상이 수포로 돌아간 때문인지 나중엔 말없는 동의를 표시하였다.

일이 이쯤 되니 바빠맞은 것은 선녀의 며느리였다. 이제부터 부엌일, 아이 키우기를 도맡아할 일을 생각하니 기가 딱 막혔다. 그는 인제야 시어머니의 가치를 저울에 달아보게 되였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그가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를 몰라 갈팡질팡할 때 “신부”는 “신랑”을 따라 시내집구경을 떠나버렸다. 사흘 만에 그들사이는 떨어질 수 없는 생활의 동반자로 되였다. 우스운것은 젊은이들보다 늙은이들의 사랑의 속도, 사랑의 감정은 더 빠르고 실제적이라는 것이다. 두 늙은이는 마주앉아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마치 그들에겐 종래로 그 무슨 불유쾌한 일이란 있은 것 같지 않았다.


바다가에서 만난 녀인/료녕민족출판사

1988.05



 안내 : "문학작품"은 sinbalam과 위챗친구하여 보내주시면 등재해드립니다.-신바람


최신 작가와 작품
2020년 최신 작품
[방홍국 장편서사극본] 舞天 (1)
[김학송 시] 그리워하며 살자(외 10수)(수기) 우리는 까치둥지마을에서 살았다 (남옥란)(단편) 금강산 숯구이총각 (차병걸)(벽소설) 바이러스 (김홍남)(수필) 님은 갔어도… (김봉선)
(단편) 상장 (림원춘)
(단편) 말 못하는 눈 (리광수)

 문학작품 더 보기(请点击) 

2020년 작가
칼럼|박광성|김호웅박승권리성일김혁채영춘리성일우상렬허명철강효삼리성일장동일박광해최학송김혁현춘산채영춘주소란|예동근|김범송김경애김문일김광림리동렬김정룡문학김학송남옥란차병걸김홍남김봉선림원춘리광수회령김혁강효삼김정권최상운서가인리문호김몽류서연궁금이김동욱조려화김희수김재현박일곽미란림운호김호웅박장길류재순박순자김훈우상렬남룡해림장춘김창영허강일회령지향옥김병민손룡호렴광호리해란서가인신철국최화길허강일이문혁김학철김혁허미란김수영김두필김일량남영전리광인한석윤|허미란김학송남룡해김영분장학규리련화한영철김경진김영택김복순최상운회령채영춘김명숙류영자김춘실려순희윤청남리동춘심명주최화|김명순[방홍국 장편서사극본] 舞天 (1) [현춘산] 남영전토템시로 본 토템문화 15 [허강일 추리소설] 도시는 알고있다18[허강일 추리소설] 흉수는 바로 그놈이였다력사정판룡 편4[구술] 박장수 편 7[珍藏版]신철국 장편스포츠실화] 챔피언 1965[구술] 김학철(7)[珍藏版]리광인 '70년대 사람들'|[구술] 남영전(1) (2) (3) (4) (5) (6) 양림(구술)채영춘(10) 리광인 실화문학《아,나의 중학시절이여》(구술)림원춘(7) |특집[珍藏版] 우리말 어원 산책(렴광호)



조글로·潮歌网조선족 정보 총집합!



关注

您可能也对以下帖子感兴趣

文章有问题?点此查看未经处理的缓存